고객은 양식 대신 대본을 샀다
통계 화면에 결제가 한 건 찍혔다. 맥글 앱에서 들어온 첫 AI 양식 결제였다. 무엇을 샀는지 열어 보니 서류가 아니었다. 행사 사회자 대본이었다.
AI 양식을 만들 때 머릿속에 둔 건 견적서나 사직서처럼 칸을 채우는 서류였다. 대본에는 채울 칸이 거의 없다. 사회자가 읽을 말을 순서대로 써 주는 글이다.
그 사람은 첫 결과를 바로 사지 않았다. 처음엔 짧게 요청했고, 다음엔 형식을 정했고, 세 번째엔 진행 순서를 하나하나 직접 적었다. 그 세 번째 결과 가운데 하나를 골라 결제했다. 만들어 보는 건 무료이고 받을 때만 돈을 내는 구조로 바꾼 지 며칠 안 됐을 때다. 한 건으로 말하기엔 이르지만, 자기 손으로 고쳐 본 문서라서 샀을 거라고 짐작한다.
요청에 없던 날짜
산 문서를 읽다가 이상한 줄을 봤다. 행사 날짜와 시각, 장소 이름이 적혀 있었다. 요청에 없던 값이다. 같은 사람이 앞서 만든 다른 안에는 사람 이름과 식사 장소의 층수까지 들어 있었다.
빈 자리로 두라는 규칙이 없었던 건 아니다. 상장, 초대장, 메뉴판 항목 아래에만 있었다. 대본은 그 목록에 없었다. 내용을 빠짐없이 채우라고 지시해 둔 탓에 모르는 값까지 채웠을 것으로 본다.
서류에서 지어낸 값은 눈에 잘 띈다. 칸 안에 있으니 지우면 된다. 대본에서는 문장 속에 섞인다. 그대로 인쇄하면 마이크 앞에서 없는 이름을 부르게 된다.
규칙을 문서 종류와 상관없이 적용하게 고쳤다. 사용자가 주지 않은 사람 이름, 날짜, 시각, 장소, 연락처는 ○○○로 둔다. 같은 종류의 대본을 여섯 개 다시 만들어 보니 지어낸 값이 사라졌다. 회사 송년회 대본으로 시험한 세 개 가운데 하나에는 「본사 10층」이 남았다. 시작 시각도 세 개 모두 들어갔다. 시각은 시간표의 예시로 쓸모가 있어 두기로 했고, 층수는 아직 숙제다.
실패는 0건이었다
그날 생성 기록에 실패는 한 건도 없었다. 지어낸 날짜가 들어간 문서도 성공으로 찍힌다. AI 기능을 붙여 둔 서비스라면 오늘 실패 기록 말고 성공한 결과를 몇 개 열어 끝까지 읽어 보면 좋겠다. 오류 수치에는 나오지 않는 문제가 거기 있었다.
규칙을 고쳐도 이미 팔린 문서는 그대로다. 그 사람이 날짜를 고쳐 썼는지, 나는 모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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